비료와 농약과 제초제 없이 농사를 짓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화학농법이 관행이 된 이유가 있습니다. 한 줌의 비료가 주는 마법과 같은 맛을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퇴비로 환산하면 수십 배를 줘야 합니다. 퇴비재료는 얼마하지 않지만 그 많은 부피와 무게를 갖고 오는데 비용이 더 나갑니다. 퇴비를 놓을 공간도 확보해야 하고 재료를 섞어 뒤집고 발효시키고 밭에다 뿌리는 일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비료만 자꾸 주게 되면 지력이 떨어지니 병이 잘 옵니다. 약을 쳐야 합니다. 제초제를 뿌리는 촌로에게 농사를 잘 모르는 초보 귀농자들이 땅을 죽이는 일이라고 어설픈 참견을 합니다.

“땅이 죽는다고? 흥, 해마다 뿌려도 풀만 잘 나오고 있구먼, 풀매기가 만만해? 그래 땅 한번 살리고 니가 죽어봐.”

아마 촌로의 이 마음은 풀을 매어 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유기농이 대세이니 유기농을 해야 할 듯한데, 말은 쉽게 뱉어도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그런데요, 비닐과 트랙터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요?

비료와 농약에서는 해방됐지만 유기농이라도 아직 석유의 도움 없이 농사짓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석유라는 값싼 에너지가 고갈돼가자 석유 기반의 유기농에 대한 회의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비닐로 덮인 이랑에서 자라는 작물이라도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비료와 농약, 제초제, 살충제가 없는 유기농 기준에도 부합합니다. 하지만 온전한 먹을거리로 볼 수 없다고 해서 ‘무비닐재배’라는 등급이 생기고 있습니다.

트랙터와 같은 무거운 기계들은 흙을 다지고 분쇄합니다. 토양생태계는 망가지고 지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기계에 의존하면 땅을 돌아보는 여유가 없습니다. 밭에 앉으면 땅과 작물 사이에서 교감을 느끼지만 운전석에 앉으면 얼른 해치워야지 하는 마음이 앞서게 됩니다. 기계를 쓰지 말자는 것이 아닙니다. 토양에 문제가 되거나 농심을 망치는 기계에 대해 우리가 아무런 의심과 반성을 하지 않게 됐기 때문입니다. 불편한 진실, 이제 유기농도 관행이 되고 있습니다. 유기농을 성찰하는 진짜 유기농, 초유기농이라는 용어도 나오고 있습니다. 기업이 유기농을 주도하는 상업화된 유기농인증을 믿지 않는 분위기가 만들어 지고 있습니다. 제철꾸러미 같은 회원직거래가 더 신뢰가 갑니다. 인증 딱지 보다 넓은 땅을 돌아다니며 마음껏 풀을 먹고 자란 닭을 먹어야 덜 미안합니다. 기적의 사과로 유명한 무투입 방식의 예술자연농법을 시도하는 농가도 늘고 있습니다. 사과의 부패실험에서 관행과 유기재배 사과는 썩어 가는데 기적의 사과만 말라가는 결과에 많은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유기농도 관행농과 다를 바 없이 퇴비를 과도하게 주기 때문입니다. 과도한 퇴비로 질산염을 축적시킨 채소는 암을 유발한다고 주장합니다. 세상은 더 높은 수준의 유기농을 요구하니 짜증이 날 법도 합니다. 그러나 생각을 뒤집어 보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인간이 농사를 짓는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agriculture는 agri(흙)+culture(경작)라는 라틴어에서 나왔습니다. 흔히 이것을 두고 농업을 땅을 가는 일이라고 풀이하지만 아닙니다. 인간이 아니라 흙이 경작한다로 읽어야 합니다. 살아있는 흙이, 수많은 토양미생물이 농사를 짓습니다. 우리는 자연의 조력자일 뿐이라고 정리하면 단순해 집니다. 인간은 복잡하고 진실은 단순합니다. 무비닐, 무경운, 무투입. 인간이 개입할 일이 줄어들면 비용과 에너지도 줄어듭니다. 물론 기적의 사과가 9년 만에 열린 것처럼 흙이 그렇게 바뀌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오해마세요, 거저 얻는 것은 없습니다.

농업의 농(農)자를 별 진(辰)과 노래 곡(曲)을 결합해 만든 글자로 풀이합니다. 해와 달과 별을 헤는 마음, 우주의 이치를 읽는 지혜가 농사라는 뜻입니다. 우주의 기운(辰)이 밭을 갈아서 작물이 자란다(曲)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또 다른 해석이 있습니다. 새벽 별(辰)을 보고 나가서 허리 굽혀(曲) 일해야 하는 고달픈 노동이 농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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