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있는 곳에서는 생태귀농이고 자립농사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다른 곳에서는 우리를 보고 낭만귀농이라고 부릅니다. 현실을 잘 모른다고 비꼬는 말투입니다. 먹고사는 문제보다 꿈과 이상에만 치우쳐 있다는 비판입니다. 다가올 석유고갈 시대를 대비해서 옛날방식 그대로 소로 밭을 가는 교육도 하고 있으니 그런 얘기를 들어도 이해가 갑니다. 시대와 참 동떨어져 있지요.

어떤 분이 귀농을 했는데 소득이 너무 없어 힘들었습니다. 초짜 농부가 키웠으니 작물의 모양새는 시원찮을 것이고 팔 만한 곳도 없으니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돈은 돈대로 나가기만 했을 겁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처럼 농지도 더 빌리고 기계도 장만해서 규모를 늘렸습니다. 하지만 수확 철이 다 돼 사람 품이 많이 필요한데 품값을 치를 돈마저 떨어져 걱정이 됐습니다. 어쩔 수 없이 아내에게 맡겨두고 도시로 나가 예전에 하던 목수 일을 해서 돈을 벌었습니다. 그렇게 자신이 밖에서 벌어온 돈으로 품값을 치르는데 이건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답니다. 분명 효율성과 이윤만을 따진다면 이게 나은 방식인데 말이죠.

함께 밥 먹는 입이라고 식구(食口)인데 최소한 밥은 같이 먹자며 가족이 함께 귀농하신 분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가족이 자주 함께 밥 먹는 풍경이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본인은 농사일로 바빠지고 큰 아이는 인근 도시로 유학 나가서 따로 살고 아내는 교육비가 걱정돼 부업을 하니 가족이 다시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됐습니다. 그 분 말로는 도시생활보다 더 얼굴보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한가로운 어부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낮에 해변에서 한가로이 쉬고 있는 어부에게 사업가가 뭐하고 있는지 묻습니다. 어부가 오늘 할 일은 다 했으니 쉰다고 하니 사업가는 답답하다는 듯 시간이 있을 때 더 많은 고기를 잡으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을 텐데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혀를 찹니다. 어부가 묻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뭘 하려는 거냐고. 그야 멋진 차와 좋은 집을 얻을 수 있고 편리하고 편한 삶을 살게 돼 편히 쉴 수 있지 않겠냐고 당연하듯 대답합니다. 그럼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다고 생각 하냐고 어부가 되묻자 사업가는 할 말을 잃고 맙니다.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하지만 모든 대가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소박하지만 ‘지금 바로 여기’에서, 행복하게 살면 되는데 많은 이들은 불확실한 미래의 더 큰 행복을 좇다가 젊음도 가족도 건강도 잃어버립니다.

“손안의 새 한 마리가 덤불속의 두 마리보다 낫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지금 확실히 갖고 있는 것이 앞으로 얻을지 모르는 불확실한 것보다 가치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잡은 고기보다 앞으로 잡을 먹이들에 관심이 더 많은 것은 사람 밖에 없습니다. 동물들은 결코 그런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습니다. 욕심을 버린 만큼 자연과 행복에 가까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불필요한 욕심과 쓸데없는 걱정으로 인생 전부를 저당 잡히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기본적인 생활도 힘든 금욕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소를 타듯 한 쪽은 돈벌이(필요에 의한), 다른 한 쪽은 행복(지금 바로 여기의)을 놓고 균형을 찾아야 합니다. 어찌됐든 선택은 본인이 하는 겁니다. 소득이 그래도 중요하다면 광부처럼 밤에 랜턴을 켜고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중심을 행복에 두면서 스스로 가난해 지겠다고 하면 풍요롭지는 못해도 더없는 즐거움이 찾아옵니다. 먹을 것이 없어 굶어야 한다면 하루를 버티기 힘들지만 자신의 뜻과 의지로 단식을 한다면 수십 일도 가능합니다. 강요된 가난은 고통스럽지만 스스로 가난을 선택한다면 다릅니다. 그것을 자발적 가난이라고 합니다. 월 소득 100만원, 200만원, 300만원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숫자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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