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재 및 한약 이력추적관리제도 도입을 놓고 정부부처 간 엇박자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반대 입장을 보이는 쪽에서 구체적인 행동을 보이고 있어 이력추적제 도입이 물 건너갈 지경에 처했다. 특히 보건복지부는 생산자단체를 배제한 채 관련 회의를 갖고 이력추적관리에 관한 법률(안) 제정·추진 불필요에 대한 의견을 모아 농가들로부터 빈축을 사고 있고, 농림수산식품부도 찬성 입장 이외에는 복지부와 달리 어떤 대응도 하지 않고 있어 농가들의 불만이 팽배하다.

지난 3~4일 충북대 개신문화관에서 열린 2012년 한국약용작물학회 심포지엄 및 춘계학술발표회에서 농식품부는 이력추적관리제도 도입 추진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이 자리에서 농식품부 관계자는 “한약이력추적관리제도 도입을 추진하려 한다”며 “한약재의 생산, 수입, 산지수집, 한약의 제조·판매 및 의료기관 입고 단계까지 단계별 정보를 기록·관리해 한약재·한약의 안전성을 확보하려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날 발표는 그동안 약용작물 관련 세미나 등에서 발표한 내용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 농가들의 반응이다. 실제 1년 전인 지난해 6월 국회에서 열린 약초산업 정책토론회에서도 농식품부는 이력추적제 도입 입장을 밝혔지만 이후 진척은 없었다. 관련 자료도 1년 전·후 내용이 일치했을 뿐 더 이상의 내용은 없었다.

반면 복지부는 이력추적제 반대를 위한 구체적인 행동에 들어갔다. 심포지엄이 열린 날이었던 지난 4일까지 복지부는 한약재 관련 단체에 한약 안전·품질관리 회의 결과에 대한 의견 제출을 받았다. 이 회의는 지난달 17일 진행된 회의로 이날 회의에선 자가규격제도의 전면 폐지와 한약제조 및 품질관리기준제도 도입으로 한약 안전·품질관리가 강화되므로 당초의 한약이력추적관리제도 도입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따라서 한약재·한약이력추적관리에 관한 법률 제정 및 추진이 불필요하다는데 까지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이날 회의엔 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청 관계자를 비롯해 대한한의사협회, 대한한방병원협회, 대한한약사회, 대한약사회, 대한한약협회, 한국한약산업협회, 한국한약도매협회 등만 참석했을 뿐 한약재 이력추적제 도입을 찬성하는 농협이나 생산자단체 측은 완전히 배제시키고 회의 후 의견제출만 받는 요식행위로 진행됐다. 뒤늦게 공문을 통해 이를 알게 된 한약재 이력제도 찬성 측은 반발했다.

이 같은 정부부처 간의 이력추적제 도입에 대한 엇박자로 인해 농가와 가공업체에선 혼란을 겪고 있다. 특히 농가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외면하는 복지부의 행태는 물론 수년간 이력추적제 도입 필요성 이외에는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농식품부에도 불만의 목소리가 팽배해 있다. 올해 들어 수급조절품목 축소와 한약자가규격폐지 등 굵직한 한약재 정책결정 과정에서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못한 농식품부가 이번 이력추적제 도입 건에도 구체적인 행동을 보이고 있는 복지부에 어떤 대응도 내놓지 못한 채 끌려다니고 있다는 것.

생산자단체의 한 관계자는 “복지부에서 의견조회를 한다고 하지만 이렇게 된(생산자단체를 배제한 회의를 하고 반대 의견을 모은) 이상 제도도입은 일단 물 건너갔다고 보아야 하는데 요즘의 한약재 관련 정책이 생산자들의 요구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일방통행 식으로 가고 있다”며 “농가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전달해야 할 농식품부 역시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농가들은 농식품부와 복지부 모두에게 불신이 상당하고 하소연을 할 통로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한편 한약재 및 한약이력추적관리제도는 18대 국회에서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한약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한약의 생산·수입, 제조, 유통 또는 판매의 각 단계별로 정보를 기록·관리하자는 취지로 당시 윤석용 한나라당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하지만 관련 단체의 찬반이 팽팽히 맞서 결국 통과되지 못하고 국회 법사위 등에서 계류돼 왔다.
김경욱kimk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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