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말씀하시지요.”
“아니 귀농하려고 한다니까요, 참 답답하네! 절차를 알려 달라구요.”
“절차? 아, 자금지원 때문에 그러시군요?”
“이제야 말귀를 알아듣네.”
전화로 귀농상담을 받다보면 이런 상황에 처하게 돼 당혹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지난 3월 개소한 귀농귀촌종합센터(농촌진흥청)에서 한 달간 상담한 5000여건의 내용 중 70% 이상이 지원정책과 금융지원에 집중됐다는 자체 분석결과가 나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생활자금이나 신용불량자 구제방법에 대한 문의가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경제상황이 어려운 도시민들이 귀농을 돌파구로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매스컴과 정부는 언제부터인가 ‘블루오션’에서 ‘억대농부’를 농업의 주요 이슈로 다루고 있습니다. 장관도 나와서 귀농귀촌을 정책브랜드로 삼겠다고 하니 귀농하는 절호의 찬스가 바로 지금이 아닌가 싶어 마음이 급해집니다.
TV에 광고까지 내보내고 있습니다. “귀농귀촌의 꿈,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라고.
글쎄, 그럴 리가요. 생각보다 힘듭니다. 도시에서 잘 살던 사람이 시골에서도 잘 정착합니다. 도시에서는 비록 실패했지만 시골에서 인생역전을 이루는 드라마 같은 사례는 거의 없습니다.
성공을 보는 관점이 고소득 창출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비교적 여유가 있는 분들을 대상으로 제2의 인생을 설계하는 방향으로 귀촌이나 전원생활을 제안하는 것이라면 몰라도 상담결과처럼 밥벌이도 쉽지 않은 사람들에게 돈벌이가 된다며 꼬드기는 짓은 국가가 할 일이 아닙니다.
귀농은 단지 이사를 가는 일이 아닙니다. 이민을 가듯 모든 것을 정리해 새로운 터전에 나머지 인생의 전부를 거는 일입니다. 무책임하게 귀농귀촌을 국가가 이렇게 장려해도 되는지 걱정입니다.
오히려 과도한 귀농현상을 걱정하고 농업농촌의 현실을 정확히 알고 신중한 접근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국가가 해야 할 일이지 않습니까? 귀농은 단순한 직업의 선택이 아니라 삶의 뿌리를 옮겨놓는 결단이다, 소득이 높진 않지만 식량안전과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대안이다, 자연과 함께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가치 있고 행복한 일이라고 솔직히 알려야 합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귀농본부의 생태귀농학교에는 크게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첫째는 당연히 귀농해 잘 정착하도록 돕는 데 있습니다. 저는 두 번째 목적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데요, 지금 귀농해서는 안 될 사람이 귀농을 성급히 결정하지 않도록 말리는 일입니다. 자기점검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귀농학교입학원서에 내가 귀농해야 하는 10가지 이유를 꼭 써내도록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강의에서는 내가 정말 왜 귀농을 하려는 것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던지는 시간을 갖습니다.
농업이 돈이 된다. 그러니 농촌으로 와라. 아낌없이 지원해 주겠다. 속지마세요. 농업은 돈벌이가 아니고 큰돈을 만질 기회도 별로 없습니다. 빈손으로 와도 될 만한 지원은 없습니다.
농업인재개발원이 2011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귀농귀촌자의 구체적인 동기는 ‘도시보다 농촌생활이 좋아서’, ‘은퇴 후 여가를 보내려고’, ‘나와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가 대부분이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지으려고 귀농한 경우는 15%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농사로 돈을 벌려는 게 아니라 참 행복을 찾고자 귀농하려는 것입니다. 그래도 먹고 살아야 귀농입니다.
하지만 귀농교육도 처음부터 환금작물에 집중해서 품목이나 기술교육에 목을 매지 마십시오. 농사경험이 전무한 초보자에게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농사의 특성상 제대로 교육을 받으려면 긴 기간이 필요하고 품목요구에 따라 그렇게 다양한 프로그램을 짤 수도 없습니다.
자신에 맞는 작물을 선택하고 집중하게 되는 적절한 시기는 귀농 이후 3~4년차입니다. 실제로 그때가 돼야 안목도 생기고 절실해 집니다. 교육과 정보에 대한 욕구도 지역과 현실에 맞고 정확해 집니다.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고 책임을 질 수 있는 때가 될 때까지 기본에 힘을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박용범 전국귀농운동본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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