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현장을 무시한 약용작물 정책으로 인해 현장에선 유통이 막혀 재고물량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한 농가가 창고에서 재고물량을 보여주고 있는 모습.

한약재 자가규격폐지 및 수급조절품목 축소 결정 등 약용작물 관련 정책이 보건복지부 위주로 돌아가면서 재배농가가 한약재산업의 주축에서 배제되고 있다. 이로 인해 산지에선 유통이 거의 이뤄지지 못해 적재된 물량이 늘어나고 있어 올 수확기 가격폭락, 이후 재배 축소로 인한 한약재대란이 발생할 우려도 높다.

보건복지부가 주도, 지난 17일 진행된 한약재수급조절위원회에선 2년간에 걸쳐 4개 품목(2012년 백수오·시호, 2013년 택사·황금)을 수급조절품목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1993년 70개 품목에서 시작된 수급조절품목은 이제 10개 품목만이 남게 됐다. 수급조절품목에서 제외된다는 것은 아무런 제재 없이 수입이 허용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결국 국산한약재의 설자리가 위축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미 수급조절품목에서 제외된 다수 품목이 국내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날 참석한 관계자들에 따르면 복지부는 규제개혁위원회에 제출한 축소일정에 맞추기 위해 4개 품목의 축소 결정을 강행, 결국 짜인 각본대로 표결을 통해 품목을 축소했다. 이미 지난해 유통제조단체가 수급조절제도가 법에 근거가 없는 제도라며 제기한 행정소송이 기한 경과로 각하됐지만 복지부는 헌법소원을 다시 제기하면 문제가 된다고 자체적으로 판단, 국내 생산기반 보호나 한약산업에 미치는 영향 등을 전혀 검토하지 않고 안건을 올린 것이다.

농가들은 수입하기로 결정한 물량조차 제대로 수입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복지부나 유통단체에서 주장하는 원활한 한약재 수급논리는 맞지 않는 처사라고 반박하고 있다. 실제 2011년 수급조절위원회에서 4003톤의 수입물량을 결정했으나 당시 수입한 물량은 1558톤에 그쳐 수입 이행률은 38.9%에 불과했다.

배석태 약용작물전국협의회장은 “수급조절제도 때문에 수입이 안 되는 것도 아닌데 복지부가 실적달성을 위해 생산현장의 의견을 무시하고 품목축소를 강행하는 것은 무리수”라고 비판했다.

이에 앞서 복지부는 지난 1일부로 16년간 유지돼 온 자가규격제를 폐지, 한약제조업소들이 품질검사를 거쳐 제조한 규격품만 한약도매업소를 통해 유통되도록 관련 제도를 변경했다. 이로 인해 지역 내 상당수의 한약재 생산자단체가 유통하던 한약재는 판로가 막히게 됐고 농가들은 제조업체로의 일방통행식 유통을 감내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이 같은 현장을 무시한 정책들로 현지에선 대부분의 물량이 묶여있는 상태고 수급조절품목 축소로 이러한 경향은 가속화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올 하반기 한약재 수확철이 돼 물량이 몰리게 되면 가격이 폭락할 가능성도 농후하다. 더욱이 농가들이 한약재 재배에서 등을 돌리게 되면 결국 한약재 시장이 수입산으로 도배될 것이란 암울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생산자단체의 한 관계자는 “올해 작황이 예년수준이 유지된다고 하면 수확기 한약재 가격은 큰 폭으로 하락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며 “최근 들어 농가를 전혀 고려치 않은 굵직한 정책들이 연이어 복지부를 주도로 추진되면서 한약재 농가들은 점점 더 국내 한약재산업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김경욱kimkw@agrinet.co.kr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