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에서 유통돼 있어야 할 고품질 GAP 황기가 판로를 찾지 못한 채 창고에 쌓여있다. 정부와 유통·가공업체의 외면 속에 모든 피해는 농가에게 전가되고 있다.

사후대책 없이 참여 장려·자가규격제 폐지도 한몫
유통·가공업체 저가 수매 혈안…정작 품질은 외면
물량 상당수 창고 적재…농가 “생산비도 못 건져”

한약재 수확이 끝나고도 수개월이 흘렀을 지난 3일 충북 제천의 모 한약재영농조합법인. 한창 소비자의 손길을 기다리거나 가공업체에서 가공에 들어가야 했을 고품질 황기 상당수가 이곳 창고에 적재돼 있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지난 연말 2012년 업무계획을 내놓으며 안전식품·안전공급 체계 강화를 위해 농산물 우수관리제도인 GAP 참여농가를 올해 대폭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몇 달도 지나지 않아 GAP재배농가들은 판로에 막혀 생산비보존도 못할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결국 정부의 GAP 육성책이 사후대책을 고려하지 못한, 보여주기식 수치 늘리기에 급급하고 있다는 지적이 현장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 법인 대표는 “지난해 재배된 160톤 중 60톤이 판로가 막혀 창고에 쌓여있다”며 “정부에선 GAP 장려책을 내놓으며 농가들에게 GAP농법으로 재배하라고 강조하고 소비자들에게도 홍보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판로가 막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현 상황에서 모든 피해는 고스란히 농가들에게 돌아가고 있다”고 답답해했다.

판로가 막힌 데에는 정부의 또 다른 정책도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16년간 유지돼 온 제도를 개정, 이달부로 시행하고 있는 자가규격제 폐지는 유통업체들의 한약재 수매에 뜸을 들이게 만들어 결국 시중에서 한약재 유통가가 크게 떨어지게 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한약재 수매가 수확기임에도 불구,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시들해져버리게 된 것이다.

더불어 저가 수매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는 대형업체들도 농가들에겐 불만사항이다. 한약재 가공제품엔 GAP를 의미하는 ‘청정’이나 ‘고품질’이라는 문구를 앞세우면서 그 이면엔 저가 수매에만 혈안이 돼 있다는 것이다.

이 지역에서 만난 한 한약재 농가는 “청정 고품질 농산물을 사용해 가공품을 만든다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인삼공사 등 큰업체가 GAP 농산물이 많은데도 불구, 다른 저가의 한약재만 수매하고 있다”며 “그렇다면 차라리 GAP를 의미하는 청정이나 고품질이라는 문구를 삭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결국 이런 여러 악재로 인해 농가들이 재배한 상당수의 GAP 한약재는 제값을 받지 못한 채 헐값에 수매돼야 할 상황에 처하게 됐다.

영농조합법인 대표는 “GAP농작물은 엄격한 관리기준으로 인해 다른 농작물보다 손도 많이 가고 생산비도 많이 드는데 이에 대한 소득보전을 전혀 하지 못한 채 헐값에 수매할 상황에 처하게 됐다”며 “GAP를 육성해야 한다고 정부가 말할 때는 판로 등 이에 대한 대비도 있었어야 했는데 정책은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고 유통·가공업체에서도 GAP 농작물을 외면하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GAP농사를 할 수 있겠느냐”고 하소연했다.

한편 2006년부터 본격 시행된 GAP제도는 농산물의 안전성 확보와 농업환경 보호를 위해 농산물의 생산, 수확 후 관리 및 유통의 각 단계에서 농약, 중금속 또는 유해생물 등 위해요소를 적절히 관리하는 제도를 말한다. 농식품부는 농장에서 식탁까지 농산물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 GAP 농산물 생산·유통을 활성화해 2015년까지 GAP 농산물을 전체 농산물 생산의 10% 수준까지 끌어올려 농산물의 안전성에 대한 국민적 기대에 부응하고 FTA 확대 등으로 늘어나게 될 수입농산물과 경쟁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것이라고 강조하며 농가들에게 GAP 생산 유도를 장려하고 있다.
김경욱kimk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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