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에 송나라 상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송나라 상인이 모자를 밑천 삼아 월나라로 가서 장사할 계획을 했습니다. 부자가 될 꿈을 품고 월나라로 들어간 송나라 상인은 월나라 사람의 차림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머리를 짧게 깎고 문신을 하고 있어 모자가 필요 없었기 때문입니다. 묻습니다. 이대로 월나라에 머물러야 할까요. 아니면 다시 송나라로 돌아가야 할까요.

귀농해서 생계의 어려움 보다 농촌의 낯선 문화에 힘들어서 다시 도시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바로 옆집에 살면서 반목과 갈등으로 깊은 상처를 안고 등을 돌린 채 살아가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고 견디다 못해 다시 짐을 챙겨 다른 곳으로 재귀농하는 사례도 종종 있습니다. 세상에 온갖 갈등이 많지만 원주민과 귀농자의 갈등만한 것도 없을 듯합니다. 살아온 방식이 달라도 너무나 다릅니다. 아파트 문만 잠그면 옆집에 사람이 죽어나가도 모른 채 살 수 있는 환경에서 남의 집 젓가락 개수까지 시시콜콜 간섭하는 울타리 안으로 들어와 산다는 건 문화충격에 가깝습니다. 불쑥 안마당으로 들어와서 장독을 열고 장맛을 본다든가, 어느새 텃밭에 제초제를 뿌려놓고 가기도 합니다. 이쪽에서는 참을 수 없는 간섭이라고 하지만 저쪽에서는 쓸데없는 과민반응이라고 봅니다.

불쑥 찾아오고 시시콜콜 간섭
도시생활 익숙한 이들에겐 충격
문화 차이 인정하고 들어가지 않으면
되레 상처만 입고 이방인 될 수도
공짜는 없는 법…억울해하지 말길


그나마 마을공동체가 살아있어 새로 들어온 사람에 대한 애정과 관심의 표시니 고마운 일입니다. 따돌리거나 냉대하는 경우도 있어 10년이 지나도 이방인으로 남는 경우도 많습니다.

도시는 관계가 필요조건이지만 농촌은 관계 자체가 충분조건입니다.

문화의 차이를 먼저 인정하고 들어가지 않으면 마을을 겉돌게 되고 상처만 깊어집니다. 가지고 온 모자를 버려야 합니다. 그렇다고 머리를 짧게 깎거나 문신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생활한복을 입고 꽁지머리를 한 채 큰 개를 끌고 다니거나 동네 분위기도 모르고 허세를 부리는 행동은 자제하는 게 좋습니다. 복장도 내 마음대로 못하냐고 억울하겠지만 마을에 동화되기는 고사하고 별종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입니다. 애써 돌아갈 이유가 없습니다. 마을사람이 되고 나서 내 개성을 발휘해도 늦지 않습니다. 귀농자도 새로운 환경으로 힘들겠지만 원주민도 갑작스런 사람의 등장으로 무척 신경이 쓰입니다. 한 귀농선배가 귀농한지 얼마 안 돼 읍내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는데 일면식도 없는 어르신이 ‘자네가 유기농 한다는 사람이냐’고 알아보더랍니다. 괜한 구설수로 선입견이 생기면 나중에 오해를 푸는 데도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대개 사소한 것에서 갈등의 씨가 싹트는 경우가 많습니다. 도리어 행동거지나 차림이 원주민보다 더 원주민 같다는 소리를 듣는다면 어떨까요·

새로 터전을 잡으려고 하니 조심해도 부딪치는 일이 많습니다. 제초제를 뿌리지 않으니 풀씨가 넘어온다고 야단맞고 농사가 서툴다 보니 참견도 많이 듣습니다. 내가 산 땅이지만 이미 짓고 계신 분이 있어 바로 농사짓지도 못하고, 딸린 집도 창고로 쓰고 있어 임시 거처를 따로 마련하기도 합니다. 밭을 빌렸는데 임대료를 턱없이 올려 받거나 길을 내어주지 않아 비싼 값을 치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귀농한 게 죄를 진 것도 아닌데 정말 억울합니다. 그래도 너무 억울해 하지 마세요.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입니다. 만일 터무니없으니 법대로 하자고 결판을 내고자 멱살잡이라도 한다면 마을에서 내편은 사라집니다. 말도 안 되는 조건이라도 한 발짝 물러서면 거꾸로 마을 모두가 내편으로 돌아설지 모릅니다. 손가락질은 내가 아닌 그 사람한테로 향하게 될 테니까요.

굴러온 돌한테 발등 다친다고 합니다. 별 일 없이 계속 해오던 일이 갑자기 틀어지게 생겼다면 아무리 정당하다고는 하나 분하고 아까울 수가 있습니다. 아파본 의사가 환자를 더 잘 보살핀다고 합니다. 우리는 너무 자신의 역할에만 집중해서 다른 사람의 처지를 얕잡아 보곤 합니다. 텃세가 심하다고만 하지 말고 처지와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네,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혼자만 살 순 없고 이 길이 가장 빠른 길인걸요. 황지우 시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타심은 이기심이지만 이기심은 이타심이 아니다”

박용범 사무처장은 생태농업활동가로 현재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사무처장을 역임하고 있고 소농학교에서 교감을 맞고 있다. 또한 ‘도시농업’을 저서, ‘생활농업으로서 도시농업활성화방안연구’를 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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