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길잡이

땅 사는 것, 배우자 만나는 것과 같아
악연 피하려면 5W 기억해야
적당한 가격인지, 물 문제는 어떤지
함께 살 배우자·동료 맘에 들어야
어떤 작물이 잘 자라는지 알아보길

귀농학교에서는 무턱대고 땅부터 사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땅을 보는 안목도 없고 내지인에게 파는 가격과 외지인에게 내놓는 가격차가 두 배가 넘는 일이 흔하기 때문입니다. 값을 더쳐준다고 해도 좋은 땅이 토박이들이 아닌 타지의 객들에게 남아 있을 리가 만무합니다. 빌려 쓸 땅은 많으니 한 두 해 안에 자리를 잡는다는 생각은 마시고 농사짓다보면 주변에서 괜찮은 조건의 땅이 나옵니다. 농사일에 힘이 부치는 연로하신 분들이 땅을 내놓기 시작하기 때문인데 다소 시간은 걸릴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농사 열심히 짓고 마을에 뿌리내리려 애쓰고 있으면 기회가 옵니다. 힘들게 농사지어 가꿔 온 땅을 농사일도 모르거나 농사와 무관한 사람에게 내놓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게 농부의 마음입니다.

지금은 이 같은 조언이 잘 먹혀들지 않습니다. 최근 수년간 급격히 농지가 감소하고 농지가격도 오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5년 사이 10만ha의 농지가 사라졌습니다, 강원도 경지면적 11만ha에 달하는 규모입니다. 1968년에 231만9000ha 이던 것이 2010년에 와서 171만5000ha로 줄어들었습니다. 식량자급률을 30%만 잡아도 165만ha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이런 추세라면 3년 안에 최소 농지한계선이 무너집니다. 농지가격도 오르고 있습니다. 농지규제의 완화는 농지투기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얼마 전 농지를 놀리는 부재지주 1만명이 적발돼 처분명령을 받았습니다. 이번 강제처분대상 농지규모만 1802ha로 나라 전체 경지면적의 0.1%를 차지할 정도입니다. 귀농하려고 전국으로 땅을 찾아 돌아다니는 사람이 많아진 것도 농지가격을 끌어올린 원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 10년 전보다 10배 이상 오른 곳이 적지 않습니다. 요즘 귀농선배들을 만나면 좋은 땅이 있으면 바로 사라고 하지 무조건 기다리라고 하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땅값이 한해가 다르고 정착을 하려면 얼마 되지 않아도 자기 땅이 있어야 마음을 다잡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새겨들어야지 곧이곧대로 듣진 마세요. 좋은 땅은 농사경험과 안목이 생길 때 보이는 법입니다. 잘 알고 믿을만한 사람이 적당한 땅을 소개했을 때는 꼭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땅을 사는 것은 결혼배우자를 만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한 귀농선배가 말하길 인연이 있어야 한다, 운명처럼 다가온다고 합니다. 결혼을 하고도 더 잘생기고 능력 있는 사람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배우자를 버리고 따라 나서는 사람은 없습니다. 땅도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모든 것이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처음 봤을 때 내가 빠진 매력으로 살아갑니다. 첫 눈에 반해 결혼을 할 수도 있지만 점차 사랑을 완성해 가는 게 더 인생의 맛이지 않겠습니까.

인연이라고 하지만 악연은 피해야 합니다. 그래서 농지구입을 위한 유용한 상식 몇 가지를 알려드립니다. 이른바 5W(won, water, way, with, work)인데 기억하기가 좋습니다.

값싼 땅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적당한 가격(won)인지 살펴봐야 합니다. 고지대로 주변에 나무와 숲이 없다면 물(water)문제를 신경써야 합니다. 마을사람들에게 물어보세요. 지하수를 파지도 빌리지도 못하는 곳일 수도 있습니다. 맹지(way)는 실제 길은 있으나 지적도 상에 길이 없는 땅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다른 사람들의 땅으로 둘러싸인 땅입니다. 이런 땅을 사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수많은 농지가 맹지입니다. 도로사용 확인서를 받는 것처럼 어떻게 해서든 길의 확보가 전제되고 난 후 사들여야 합니다. 현황도로만 보고 매입한 후 고생한 사례가 많습니다. 함께(with) 살 배우자나 동료의 마음에도 들어야 합니다. 농사를 함께 할 사람의 동의는 매우 중요합니다. 농사를 짓기 전에 이 땅에 어떤 작물(work)이 잘 자라는지 알아야 합니다. 요즈음은 마을로 이뤄진 공동체라기보다 작목반으로 뭉쳐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농사를 짓게 될 지 고려해서 토질과 환경에 맞는 농사계획을 큰 그림으로 그려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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