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핵심은 우리농업 요구와 비전을 협상에 반영하는 것”

세계무역기구(WTO)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니 하는, 통상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는 계층이 우리 농민들이라면, 정부는 그 피해자인 농민들이 아는 내용으로 농민들에게 유리하게 협상을 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와 통상관료들은 ‘통상법’을 내세우며 자기들이 한 일이 국익인 양 농민들을 윽박지르고 따돌린다. 송기호 변호사(49)는 농업통상의 이런 현실을 고발하고 개선하는데 열정을 쏟고 있다. “농업이 살아야 지역이 살고, 나라가 산다”며 “우리 농업의 요구와 비전을 협상에 반영하는 게 통상의 과제”라고 단언하는 그다. 한중 마늘협상 파동, 쌀협상,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광우병 파동, 한·EU FTA 등 통상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그는 법률가로서 그런 입장에 서왔다. 요즘에는 외교통상부의 한·EU FTA 협정문 오류를 낱낱이 파헤쳐 장안의 지가를 올리는 그를 초대석에서 만났다.

#송기호 변호사는 민변 소속으로 통상문제를 가지고 늘상 정부와 부딪치는 모습처럼 비춰지지만, 실상은 큰소리를 내는 적이 거의 없는 차분한 성격이다. 4남3녀 중 여섯째로 태어나 부인과 사이에 2남을 두었다. 종교는 기독교, 취미는 야구, 좋아하는 음식은 조개류인 ‘꼬막’이다. 최근 기억에 남은 영화는 ‘말아톤’, 애창곡은 ‘라이너스’의 ‘연’이다. 그리고 존경하는 인물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송 변호사는 평소 자신의 이력을 내세우는 성품이 아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1981년 서울대 무역학과에 들어가 유명한 ‘농촌법학회’(농법회)에서 활동했던 일부터 자세히 들어보았다. 60년대에 만들어진 농법회는 7, 80년대 서울대 학생운동의 중요 축이었다. 권오승 전 공정거래위원장,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심재철 국회의원 등이 농법회 출신이다.

“주축은 법대생들이었고요. 도시대학생들이 단순히 농촌봉사활동 보다는 농민과 함께 하는 농촌활동을 하자는 취지였지요.” 그가 농촌법학회에서 맡은 분야가 농업이었고, 전남 고흥 출신의 촌사람인 그는 대학에서 그렇게 농업과 엮였다. 70년대 후반 함평고구마 사건에 이어 80년대 초반 농민운동이 뿌리를 내리는 시기다. 송 변호사는 당시 대전 가톨릭농민회에 드나들면서 서경원, 노금노 선생을 알게 됐다고 한다.

학교와 군대를 마친 그는 농촌법학회 선배가 활동하던 뒤를 따라 YMCA 호남지역 간사로 해남에 내려가 농민운동을 시작했다. 60년대 후반부터 송아지 분양, 장려쌀, 신협 등의 농촌운동을 하던 YMCA는 80년대 농민운동의 성장과 함께 풀뿌리 농촌운동의 한단계 발전을 도모하던 때였다. 그는 조직가로서 농민교육과 조직화에 매달렸다. 이어 그는 영산강 일대에서 불붙었던 수세(농조조합비) 폐지 및 농조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영산강농조의 대의원회 총무를 맡았던 것을 계기로 나주농민회 창립에 관여했다. 당시 나주 농민운동에는 임경순 전 나주농민회장, 신정훈 전 나주시장이 있었다고 한다.

나주를 끝으로 그는 영암에 정착해 농사일에 뛰어들었지만, 농민으로는 성공하지 못했다. “영암, 나주, 해남 등이 상업농 지대였는데, 남의 땅을 빌려 지은 농사로는 농산물의 가격 등락이 심해서 경영안정이 안되더라고요.”

그렇게 농사를 접은 그는 서울로 다시 올라와서 일자리를 찾았지만, “나이도 많고 운동권 출신일지도 모르는” 그를 받아주는 곳이 없어 맘고생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선배가 기회를 준 덕에 국민은행 시험을 치렀고, 취직과 함께 결혼도 했다. 그러나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면서도 진로를 고민하다 오래지 않아 사표를 내고 졸업 후 10년 만에 학교로 다시 돌아가 사법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에 들어간 그는 통상법을 선택하면서 다시 농업문제에 깊이 들어가게 된다. “연수원 들어가서 시간을 가지고 보니까 통상문제는 곧 농업이 핵심이더라구요. 농업현장을 떠났지만, 이 분야에서 농업계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을 해야겠다고 맘 먹었습니다.” WTO 연수도 갔고, 콜롬비아대학에서 통상법도 공부했다.

연수원 이후 로펌(법률회사)에 들어갔는데 농업통상문제에 접근하는 게 자유롭지 못해서 로펌을 그만두고 현재의 ‘수륜법률사무소’를 개업하기 전, 농업분야를 우대하는 나라인 호주에 가서 농업통상과 환경법을 공부했다.

로펌에서 일하던 2002년. 한중 마늘협상 파동이 일어난다. 중국산 마늘수입이 급증해 피해를 본 농민들이 SG(세이프가드, 긴급수입제한조치)를 연장해 달라고 무역위원회에 요청했지만, 무역위는 피해조사 마저 거부했을 때다. 알고 보니 우리정부가 중국과 협상시 ‘세이프가드를 연장하지 않겠다’는 충격적인 ‘이면합의’를 한 게 드러났다. “이 사건을 통해 무역위가 피해조사를 일방적으로 거부한 것이 잘못된 것임을 밝혔지요. 결과적으로 SG 연장조사는 지켜지지 않았지만, 재판부가 근거로 내세운 마늘종합대책의 국가 이행의무에 대해 제대로 되는지 지금도 확인중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통상은 미·유럽 등 강대국에 유리하게 만들어진 개념 그대로 받아들인 것일 뿐…진정한 통상법은 우리농업의 방향·이익을 이해시키고 장래에 필요한 기념을 만들고 제도화 하는데 중점 둬야

그는 당시 소송비용이 부족한 농민들을 돕기 위해 마늘을 함께 팔아주기도 했다. “수임료를 못받겠습니까만, 농민들이 마늘협상으로 인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나서고 있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 함께 한 거지요.”(웃음) 당시 소비자단체, 종교단체, 직장 등에서 송변호사를 통해 마늘이 직거래됐던 추억이다.

송기호 변호사는 유난히 공부를 많이 하고 그만큼 책을 많이 펴내는 법률가다. ‘WTO 시대의 농업통상법’ ‘한미 FTA의 마지노선’ ‘곱창을 위한 변론’에 이어 최근 펴낸 ‘맛있는 식품법 혁명’ 등. 변호사일에 사회단체 일에 시간이 모자라는 와중에 책을 참 많이 썼다고 하자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통상이라는 것은 미국 유럽 등 강대국이 주도합니다. 용어, 제도, 구조 모두가 그들의 이익을 극대화 하기 위해 만들어지는데, 우리 통상은 이런 개념을 그대로 수입하는데 머물고 있습니다. 진정한 통상법은 우리 농업의 방향, 이익, 정책을 대외적으로 이해시키고, 장래에 필요한 개념을 만들고 제도화하는데 중점을 둬야 합니다.” 아무리 농업강국도 중소규모의 소농이 있고, 농업이 유지될 수 있도록 통상법질서를 만드는데, 우리는 농업이 통상법의 핵심체계인데도 역할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내부에서 농업을 천시 할수록 이익을 보는 것은 협상의 이익을 가져가는 골프장, 아파트 같은 곳 아니냐”는 것이다. 그의 일관된 주장은 통상에서 우리 농업의 중요성을 인정받고 관철하는 데 있다.

농업통상은 농림부가 주도하는 게 정답, 외통부 담당자의 단기업적으로 접근해서는 농민들만 피해…이해당사자에게 실질적인 내용도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협상 잘됐다고 호도하는 통상관료 비밀주의는 문제

내친 김에 통상관료의 문제점을 물어보자 2004년 쌀협상을 거론한다. “돌이켜보면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을 비롯한 관료들은 도하개발아젠다(DDA)가 곧 타결되면 쌀은 가혹한 조건으로 개방해야 한다며 지나치게 불리한 조건으로 관세화 유예를 했는데, 지금 DDA가 타결됐느냐”는 반문이다. 그 때 그 때 임기응변과 면피성 대응으로 일관한 결과 상황이 더욱 악화되는 통상의 고질병 때문에 쌀도 2015년 관세화를 검토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고 한탄한다. 그는 농업통상은 농림부가 주도하는 게 맞다고 한다. “외통부 주도로, 담당자의 단기 업적으로 접근해서는 곤란하죠. 자리에 있을 때 가시적 성과를 내려고 본질을 악화시키다 보면 나중에 농민들만 피해를 입게 됩니다.”

특히 그는 통상관료들의 비밀주의에 대해 우려를 많이 했다. “적어도 이해당사자에게는 실체적인 내용이 제대로 공개돼야 함에도 그렇게 하지 않고, 협상을 잘했다고만 호도한다”는 것이다. 

송 변호사는 향후 우리 농업통상은 26%에 불과한 식량자급률을 감안해 식량안보를 확보하고, 축산부문 또한 단백질 주권 차원에서 목표를 설정하고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식량안보 차원에서는 수출국들이 수출통제를 맘대로 할 수 없도록 하는 것도 과제다. 또한 그 어느 농업국가보다도 노령화된 농촌사회에서 농업의 역할은 무엇인지 개념화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미국이나 유럽이 겪지 못한 상황은 우리가 농촌사회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연구해서 논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국제사회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도 북한과의 거래는 예외적으로 민족간 내부거래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농업이 부활해야 도시도 살고, 그러기 위해선 도시민이 농업의 역할을 인지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도시민과 농민이 함께 가야 나라가 사는 만큼, 통상과제는 협상이 농업의 논리를 반영하고 그것을 방해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는 말로 핵심을 정리했다.
이상길leesg@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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